비질vigil은 토론토 피그세이브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더 세이브 무브먼트(the save movement)라는 이름으로 각국에 500여개의 챕터를 가지고 있는 전 세계적인 동물해방 풀뿌리 운동이다. 비질의 사전적 의미는 밤샘 간호, 철야 기도이다. 활동가들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도살장 앞을 찾아가 그곳에서 축산업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을 만난다. 이들은 동시에 곧 살해당할 존재들이다. 활동가들은 이들이 온몸으로 말하는 육식 산업의 진실을 보고 듣고 맡고 감각한다. 목격하여 기록하고 사람들에게 공유한다. 이 모든 과정을 비질이라 한다.
작년 5월 27일 첫 비질을 시작으로 최근 11월 29일까지 나는 29번의 비질을 하였다. 공교롭게도 29일은 한국의 농장에서 한 명의 닭이 태어나 도살장에서 살해되기까지의 기간이다. 나는 29일간 비질을 하면서 나 자신이 너무도 특권을 가진 인간임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29일이면 도살되었지만 29일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인간이었다. 특권을 가득 가진 인간이었다. 인간이라는 이유로 나는 언제든 그들을 해하거나 죽이거나 먹을 수 있었다. 그러고도 맞거나 감금당하거나 강제임신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 앞에 서 있을 때만큼은 인간인 것이 너무도 참을 수 없었다. 이러한 권력은 인간동물이라는 이유로 내게 주어졌고, 반면에 나의 건너편에 있었던 동물들은 얻지 못했다.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생김새, 피부색, 몸의 크기, 신체 특징, 신체 기관 유무, 사용 언어. 우리가 서로에게 배우거나 서로를 사랑할 이유가 될 일들이 비인간 동물의 앞에서는 차별의 이유가 되었다. 이들이 네 발을 가졌거나 발이 없거나 날개가 있다는, 이상한(queer) 신체를 가졌다는 이유로. 어떤 인간동물은 비인간동물이 인간의 언어를 쓰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했고, 어떤 인간동물은 너와 나의 생김새가 다르기 때문에 너를 먹어도 된다고 말했다.
지금껏 생존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나는 인간의 언어로 해석하여 전해 왔다. 인간의 언어 인간의 논리로,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말해왔다. 일부 사람들은 착취당하는 비인간동물을 목소리 없는 자들(the voiceless) 라고 표현하지만, 내가 만난 이들은 분명 목소리가 있었다. 그것을 외면하고 듣지 않은 인간이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이 차별과 폭력은 너무도 고통스럽고 끔찍하다. 나도 너희들처럼 맞지 않고 싶다.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자유롭게 걷고싶다. 보호받고 싶다. 누군가에게 먹히지 않고 늙어서 죽고싶다.'
전시장에서 울려퍼지는 소리는 그간의 비질에서 만난 이들의 목소리다. 세 개의 오디오 중 하나는 인간의 목소리를 담고있다. 하지만 음원이 반전된 탓에 그들의 말은 의미를 구성하지 않는다. 인간도 목소리를 가진 하나의 동물 종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전시장에서만큼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얻는 권력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때로 누군가의 존엄을 지킨다는 것은 권력의 자리로 그들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권력 없는 자의 자리로 권력있는 자들이 내려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진에는 어떠한 정보도 추가적으로 제공되지 않는다. 제목도 설명도 액자도 없다. 이들은 작품이 아니다. 존재했던 얼굴이며, 거울을 볼 때 매일 마주하는, 단지 그런 얼굴이며, 거리를 지나면 보는, 그런 얼굴이다. 얼굴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가장 강력한 언어이다. 우리는 만날 수 있다. 누군가를 우위에 두지 않고 대화할 수 있다. 피하지 않고, 눈 앞에서, 오롯이.
그곳 도살장 앞에서 시선의 마주침은 일방적이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보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목격한 만큼 그들도 나를 목격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증인'으로 불렸지만 내가 아는 진짜 증인들은 모두 죽임 당했다. 내가 마주한 동물들은 모두 용감했고, 모두 울고 있었다.
나는 사진 속 당신들의 얼굴과 몸을 기억한다. 당신들이 어떤 소리를 냈고, 어떤 몸짓으로 말했고, 어떤 표정으로 어떤 온기를 내뿜었는지 기억한다. 소리와 냄새로 만났던 모든 당신들을 기억한다. 지금도 축산업 홀로코스트로 인해 농장과 도살장 그리고 도로 위에서 식탁 위에서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 존재들을 애도한다. 당신들을 만나고 싶다.